인터뷰 / 올드 타이머 

한인타운서 46년 치과의사 은퇴 장기열 박사

 "한인들의 공익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라면 개인의 잇속을 챙겨서는 안돼요. 초심을 잃고 사익 추구에 빠져들어선 절대 안돼요."

 한인 1세로는 처음으로 미국 치과면허를 취득하고 치과를 개업해 46년 동안 한인타운 한켠을 묵묵히 지켜오다 은퇴를 앞둔 한 노(老)의사의 일성이다.

 LA 이민사회의 산증인으로 한인사회와 함께 해온 '올드 타이머', 장기열(80)박사. 치과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쉼없이 달려왔던 그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71년 3월 개업해 긴 시간동안 동거동락한 '장기열 치과'도 이달 말이면 간판을 내리고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세월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어 평생의 터전을 이제 정리해야하는 노의사는 "섭섭하고 서운하다"는 소회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힌다. 은퇴를 앞둔 장박사는 요즘 은퇴 후의 계획과 시간들에 설레기도 하지만 자꾸만 과거를 더 되돌아보게 된단다.

▶ 이민사회 형성 씨앗 뿌려

 "한인사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하나가 돼 힘을 합쳐 헤쳐나가던 '정'이 끈끈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때가 그리워요. 지금이야 시대도 변했고 한인타운에 사람들도 많아져 예전같을 수는 없겠죠. 그래서인지 과거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없어 아쉬어요. 예전 한인타운을 함께 일궜던 그때 그 사람들이 그리워요."

 장박사는 미국 치과 면허를 취득하고 LA에서 개업한 첫번째 1세 한인 치과의사다. 서울사대부고를 졸업, 1959년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장박사는 1963년 미국으로 건너와 고달픈 유학생활 끝에 1971년 1월 로마린다 대학 치대를 졸업하고 그해 3월 한인 1세로는 처음으로 치과를 개업했다. 46년 전, LA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위한 씨앗이 뿌려지던 시기에 그도 함께 씨앗을 뿌렸다. 그의 모친은 LA한인사회 형성 초기 대표적인 한인사회 인사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소니아 석(1996년 타계) 여사.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모자가 LA한인타운을 일궈온 것이다. 

▶ 모친 소니아 석 여사 도와 봉사

 어머니 소니아 석 여사는 1948년 미국으로 건너와 한인커뮤니티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본국과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한인회장, 한인회관 건축 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한인회관 건립기금으로 15만달러를 한국정부로부터 따내기도 했다.

 치과를 운영하며 옆에서 어머니를 돕던 장박사는 1972년 한인회 이사 활동을 시작으로 1974년 현 LA한인상공회의소의 전신인 남가주한인상공회의소에 이사로 들어가 한인 경제 발전을 위해 뛰었다. 1974~1975년 미국한인치과의사협회장, 1979~1981년까지 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를 다져왔다.

 상의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단체장을 하면서 단체 발전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많이 털어낸 리더'로 상의이사들에게 회자되기도 한다.

▶ 치과의사는 나의 '천직'...

 "요즘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사익을 챙기다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들을 보기도 하는데, 공익을 위해 나선 사람들은 절대 자기 주머니를 챙길 생각을 하면 안돼요."

 특히 장박사는 어머니가 나서서 건립했던 LA한인회관이 최근 분쟁의 중심에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2년 전까지만해도 장박사는 치과의사를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 법. 예전보다 느려진 신체의 움직임에 은퇴를 결심했다. 
 한인사회을 일구고 지켜온 노의사의 내일은 소박하기만 하다.

 "은퇴 후 계획이요? 큰 욕심 없어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나쁜 소리 안들으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제 바람이에요. 좋아하는 골프도 가끔 치고 옛 친구들 만나 식사나 하면서 지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