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 체제 안돼…헌법재판소 소장 빨리 임명하라" 

  文대통령의 '대행 체제, 재판관들 동의'발언에 반박
"대통령의 인사 문제 제기한것 처음"…청와대 당혹감

 
 헌법재판소는 16일 재판관(8명) 회의를 열어 헌재소장과 재판관 1명 공석(空席)에 대한 우려와 조속한 임명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이수 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청와대 발표로 인해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재 국감이 시작도 못 해 보고 파행한 지 사흘 만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1시간여 동안 회의를 한 끝에 언론에 '보도 참고자료'형식으로 입장을 내놨다. 

 헌재는 입장문에서 "헌재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의 장기화로 인하여 헌재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은 물론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位相)에 상당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재판관들이) 깊은 우려를 표했다"며 "(재판관들은) 조속히 임명 절차가 진행돼 헌재가 온전한 구성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재판관 회의에는 김이수 소장 대행을 비롯한 현직 재판관 8명이 모두 참석했다. 김 대행이 직접 헌재 공보관을 불러 언론에 회의 결과를 알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관들은 입장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문 대통령을 향해 소장·재판관을 서둘러 임명해달라고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헌법상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가운데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김이수 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국회는 지난달 11일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8일 대통령 몫인 재판관 1명에 민변(民辯) 출신인 이유정 변호사를 지명했지만 이 변호사는 신상 문제로 9월 초 자진사퇴했다. 문 대통령이 이후 새 소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으면서 헌재소장 자리는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이 퇴임한 이래 8개월 넘게 비어 있다.

 헌재가 정쟁의 중심에 선 것에 대해 헌재 내부에선 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과 야당의 정치공세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헌재의 한 연구관은 "헌법기관의 수장 공백이 9개월째에 이르는데도 후임 소장을 임명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부당한 이유로 김 권한대행의 인준안을 부결시킨 국회 책임이 크지만 임명권자(대통령)도 헌재 정상화를 최우선에 두고 정치적 타협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새 정부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헌재를 청와대가 지나치게 홀대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이 지난 10일 "헌재는 지난달 18일 재판관 간담회에서 재판관 전원이 김이수 재판관의 권한대행직 수행에 동의했다"며 "김이수 대행 체제를 유지키로 했다"고 밝힌 것이 야당은 물론 헌재 내부의 반발도 부른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지난 2012년 초 여야의 대립으로 국회 몫 재판관 1명 공백이 7개월 넘게 이어지자 당시 이강국 소장 명의로 국회의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낸 일이 있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