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남상욱 기자/취재부

 기자에겐 '미투'(Me too) 표현과 관련해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대학 시절 미국 연수를 왔다가 여행 중에 햄버거 체인점인 맥도날드에 일행과 함께 들렀다.

 모두 미국 방문이 처음이고 영어도 짧았던 터라 메뉴를 고르는 일은 늘 고역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가 앞에서 누군가 가장 먼저 주문을 하면 바로 뒤에 서서 외쳤다. "미투!". 그리고 이 '미투'는 뒤에 줄서있던 나머지 일행에게 전파되어 어떤 날은 15명이 동일한 햄버거를 먹은 적도 있었다. 그날 주문을 받던 햄버거 직원이 지었던 묘한 미소는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지금도 남아 있다.

 이 '미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성범죄 피해를 알리는 '미투(#MeToo)'캠페인을 통해서 말이다. 이 캠페인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이후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제안한 것으로 SNS에 성범죄 피해를 밝히며 '미투'해시태그를 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에 지지자들은 하루만에 50만 건의 트잇으로, 페이북 사용자도 6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미투 관련 게시물은 트위터에서만 130만건을 넘어섰다.

 유명인들도 호응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등 톱스타들이 와인스틴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자 이들의 고백에 용기를 얻어 배우 리즈 위더스푼, 아메리카 페라라도 자신들의 성범죄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가수 레이디 가가와 클린턴 스캔들의 주인공 르윈스키도 '미투' 캠페인을 지지했다. 영화계뿐 아니다. 미국 체조 금메달리스트 맥카일라 마로니는 무려 13살 때부터 팀 닥터 래리 나사르 박사에게 성추행을 당해왔다고 고백했다. 

'미투'캠페인이 확산되자 이번엔 거꾸로 가해자인 남성들이 직접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고백하는 '내가그랬다'(#IDidThat) 캠페인도 등장했다. 이 외에도 '그가 어떻게'(#HimThough) '어떻게 바꿀 것인가'(#HowIWillChange) '내가 그럴리 없다'(#IWouldn't Even) 등 미투 캠페인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새로운 해시태그들도 속속 등장했다. 

 성추행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 발생하는 범죄 유형 중 하나이다. 가정은 물론 학교, 일터, 거리 등 어디에도 성추행 안전지대는 없는 것이 강자와 약자의 구도 때문이다.

 비단 성추행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별과 직위, 권력과 돈으로 규정된 상하 구조에서 착취와 억압의 범죄들이 자행된다. 약자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침묵하는 사이 악순환은 거듭된다.

 이번에 나온'미투' 캠페인은 단지 피해자라는 약자 의식에서 나온 소극적 저항에 그치지 않는다. 약자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 수 없도록 억압하는 강자의 구조에 대한 적극적 저항인 셈이다.

 물론 '미투' 캠페인으로 강자와 약자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진 않을 것이다. 성폭행범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갑질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약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약자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제 기자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맥도날드 미투'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