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북한의 '북미대화 용의'에 미국이 명시적 '비핵화' 의사 확인을 조건으로 거론함에 따라 북미대화의 입구 찾기에 험로가 예상된다.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대리는 28일 한국 외교부 담당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는 비핵화라고 하는 명시된 목표가 없는, 북한의 지속적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의 시간벌기용으로 끝날 (북미)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며 "소중한 시간과 대화 기회를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북한의 의지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밝힌 북미대화의 '적절한 조건'에 대한 보충설명 격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계기에 방남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말한 데 대해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미국은 북한이 거론해온 '핵군축 회담'은 있을 수 없으며, 북한의 보유 핵무기 폐기를 포함한 비핵화가 대화의 목표라는 점을 북한으로부터 확인받은 뒤 대화에 나서겠다는 기조를 밝힌 것이다.

내퍼 대사대리의 발언은 미국이 김영철 부위원장이 거론했다는 '북미대화 용의'가 비핵화 대화 용의로 보기 어렵다는 잠정 판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외교가는 일단 미국의 대화 조건 제시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입장을 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미간 '접촉'은 있을 수 있겠지만 (협상 수준의) '대화'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고 나올 것 같은 조짐이 없어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북미 간의 접점 찾기를 유도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중재 외교의 난관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비핵화 대화'로 규정할 수 있고, 북한은 북한대로 내부에서 외교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북미대화의 의제와 포맷을 만들어 양측 모두를 설득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퍼 대사대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이 북한 측에 아주 명백하게 비핵화의 중요성에 대한 한미의 공통된 입장을 전달하고 북측 반응을 미국에 전달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방식을 통해 북한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심으로 미국과 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선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부터 북핵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잇따라 미국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외교원 신범철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라는 표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는 대북특사 파견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며 "미국을 상대로는 유연한 태도를 촉구하는 동시에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화 만능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단하기 전에 만났다가 '비핵화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확인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미국에서 평화적 해결 노력이 더 필요 없다는 결론을 앞당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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