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힘든데 김영란법까지 예정돼 고급식당들 문닫아
손님감소 대비해 가격대 낮추고 업종변경도…"살아남으려는 시도"

(전국종합=연합뉴스)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았어요. 주요 손님이었던 공무원들도 세종시로 대거 옮겨간 데다, 매출이 뚝 떨어져서 버티기 쉽지 않았어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옥에서 14년 동안 한식집 '해인'을 운영해온 여주인은 지난 6월 말 영업을 중단했다.

정갈한 음식으로 회사원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이 한식집을 운영하며 많은 손님과 좋은 인연을 맺은 주인은 고민 끝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7월에는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유명 한정식집인 유정(有情)이 60년 만에 문을 닫고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변신 중이다.

이곳은 과거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매출 부진을 겪던 중 하반기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점심 3만원대, 저녁 5만원대 이상의 적지 않은 가격의 음식을 주문하는 주요 고객층은 정치인, 고위 공무원, 언론계 인사 등이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법 적용을 받는 공무원과 언론인 등 손님 감소가 뻔해 업종 '다운사이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달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1인당 3만원이 넘는 음식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 젊은 층의 한정식 기피, 경기침체가 맞물려 매출 부진을 겪던 한정식집 등 고급 음식점이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영업을 중단하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정통 일식집 '학'도 문을 닫았다.

건물 관계자는 "아무래도 임대료를 내기 힘들었던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유명 음식점의 고전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36년 전통을 지닌 부산 동래구의 한 유명 초밥집도 굴비 정식 집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생선회 코스 가격이 4만∼5만원대에 달했던 반면 1만원대 굴비 정식으로 바꿔 고객 부담을 줄이고 매출을 올리는 전략이다.

최근 터진 콜레라 사태는 업종 변경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의 J 한우 전문점은 올해 3월 돌연 문을 닫았다.

2008년 문을 연 이 식당은 차량 50대를 동시에 댈 수 있는 대형 음식점이었으나 8년 만에 폐업했다.

월 1천만원에 육박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경쟁 한우 전문점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송도신도시가 생기면서 먹거리 상권이 분산되면서 식당 폐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음식업중앙회 연수구지부 관계자는 "대형 업소는 직원을 최소 7∼8명은 고용하고, 임대료도 월 수백만원에 달하는데 장기간 경기가 이어지면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 가구가 몰린 대구 수성구 황금동의 P 한우 전문점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2008년 개업한 지 7년 만이다.

고급 한우 판매로 입소문이 나 대구에서 손꼽히는 한우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경기침체로 손님이 줄어 건물 임대료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간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지부 사무국장은 "1인당 3만원 이하의 음식 대접만 가능한 김영란법은 공무원은 물론 기업인들까지 고급 음식점 출입을 힘들게 할 것"이라며 "전통 있는 고급식당이 폐업하거나 법 시행 전 살아남기 위해 업종 변경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민 최은지 정회성 이유미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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