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으로 가기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물 건너갔다. '죽음의 조'에서 그나마 이점으로 평가받았던 대진 순서마저도 이제는 악재로 돌변했다.

한국과 같은 F조의 멕시코는 18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독일을 1-0으로 꺾었다. 독일을 제압한 멕시코는 이번 대회 최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멕시코가 본선 첫 경기에서 대어를 낚으면서 F조 순위 경쟁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16강행을 위한 현실적인 목표인 조 2위를 노렸던 한국으로서는 멕시코의 승리가 전혀 반갑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에서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F조에 편성됐다. 1승의 제물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본선 상대들에 대한 부담이 컸다. 어느 한 팀도 만만하게 볼 상대가 없었고 3개국이 모두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보다 한 수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태용호'가 그나마 16강행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진 순서가 무난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차전 스웨덴, 2차전 멕시코, 3차전 독일과의 맞대결로 조별리그를 소화하기로 정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으로 보거나 국가별 전력으로 볼 때 가장 약한 팀부터 가장 강한 팀의 순서로 이어지는 대진이었다. 8년 만에 본선에 출전한 스웨덴과 첫 경기를 치르고 F조 최강의 전력인 독일과 최종전을 소화하는 대진 순서를 잘 활용하면 한국에게도 16강으로 향하는 길이 보일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월드컵은 각 조 4개팀 가운데 1~2위가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한국 경기 결과만큼이나 같은 조 국가들의 결과도 순위 경쟁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실제로 조별리그에서 2승1패(승점 6)를 거둔 국가가 16강행에 좌절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1승2패(승점 3)를 기록한 국가가 16강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독주를 하고 나머지 3개국이 조 2위 경쟁을 벌이는 것을 16강으로 가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상정했다.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일이 조별리그 2차전까지 멕시코와 스웨덴을 연파하면서 2연승을 거두는 것이 필수 조건이었다. 독일이 2연승을 거두면서 일찌감치 조 1위를 확정하거나 적어도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이후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을 만나면 16강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체력안배 차원에서 전력을 100% 가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때문에 한국이 조별리그 2차전까지 16강 진출 가능성을 남겨둔다면 독일을 상대로 이변을 연출하면서 16강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시나리오는 F조 첫 경기가 끝난 뒤 수포로 돌아갔다. 멕시코가 독일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한국이 꿈꾸던 16강행 시나리오는 시작부터 꼬여버렸다. 멕시코의 예상 밖 승리로 남은 2경기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 2차전 상대인 멕시코와 3차전 상대인 독일은 한국을 이겨야만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1차전 결과에 따라 남은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더욱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16강 조기 진출을 위해 한국전에 사력을 다해야하고 독일은 한국과의 최종전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난다. 독일 입장에서도 벼랑 끝 승부라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신태용호'에게는 멕시코전과 독일전이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 돼버렸다.

도영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