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이미 구속기소…최종 책임자로서 더 무거운 책임져야"
"징용재판 등 핵심혐의서 단순 지시 넘어 직접 주도 확인"
'추가 혐의' 박병대 영장 재청구…'일부 혐의인정' 고영한은 불구속 수사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박초롱 기자 = 검찰이 18일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소환 조사를 마무리한 지 하루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내부적으로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일찌감치 내려뒀음을 시사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영장청구 배경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게 필요하다"며 "그의 지시와 방침에 따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미 구속기소 된 상태"라고 밝혔다.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직무와 관련한 불법행위로 구속기소 된 상황에서 사법행정권을 총괄한 수장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직접적인 관여가 드러나는 각종 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에 반해서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전면부인하는 취지로 일관한 것도 결정적인 영장청구 배경으로 작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등 이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핵심 범죄혐의들에서 단순히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것을 넘어 직접 주도하고 행동한 게 진술과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주요 혐의사실과 관련해 수동적으로 보고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전면에 나서 직접 행동을 취한 부분이 각종 증거나 진술을 통해 규명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강제징용 재판개입 외에도 ▲ 법관에 대한 부당한 사찰 ▲ 헌법재판소 비밀수집 및 누설 ▲ 헌재 견제를 위한 재판개입 사건 등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관여 증거를 확보했다.

'법원행정처 차장→법원행정처장→대법원장'으로 이르는 정식 보고체계 라인이 아니라 별도 라인을 가동해 각종 지시를 하고 보고받은 정황도 양 전 대법원장이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한 근거로 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첫 소환 조사 때부터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이런 진술 태도를 고려할 때, 조사 초기부터 검찰이 일찌감치 영장청구 쪽으로 무게를 두지 않았겠냐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과 여러 범죄사실에서 공모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도 재청구했다.

범죄혐의가 중대한 데다 지난달 초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추가 수사에서 서기호 전 의원의 법관 재임용 탈락 불복소송에 개입한 새로운 혐의사실이 추가된 점 등이 영장 재청구 사유로 작용했다.

특히 검찰은 앞서 법원이 박 전 대법관 영장의 기각 사유로 삼았던 '공모관계 소명 부족'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했다.

한편 범행에 가담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혐의를 일부 인정한 고영한 전 대법관은 영장 재청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 관계자는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상대적으로 혐의의 경중에서 차이가 있는 점 등이 있어 최대한 신중히 검토해 영장 재청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문 모 전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를 은폐하기 위해 일선 형사재판에 직접 개입한 의혹 등 일부 혐의사실을 인정한 점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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